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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서 남들이 많이 쓰는 기술을 따라가면 안되는 이유

2022-04-04

summary, business, Programming

(폴 그레이엄의 Beating the Averages 에세이를 요약)


1995년 인터넷이 막 태동할 무렵 Viaweb이라는 서비스가 생겨났다. 이 서비스는 다른 회사들이 손쉽게 쇼핑몰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였다. Viaweb은 빠르게 유저층을 키워가며 성장했고 멀지 않은 시점에 야후에 4천 9백만 달러에 성공적으로 매각된다. 또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Viaweb의 창업자들은 Y-combinator라는 스타트업 육성 기관을 설립한다. Y-combinator는 에어비앤비, 드랍박스와 같은 걸출한 기업을 배출하고 큰 성공을 거두어 현재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게 여겨지는 스타트업 육성 조직으로 여겨지고 있다.

Viaweb의 창업자중 하나인 폴 그레이엄은 Viaweb이 경쟁사들과 대비해 탁월했던 점이 무엇인지 글을 남겼다. Viaweb은 폴 그레이엄과 그의 친구 로버트 모리스 두 사람이 시작하였으며, 야후에 인수되었던 1998년 당시까지도 고작 한명의 동료만 추가되어 총 3명이서 운영하던 회사였다. 세사람 모두 개발자였으며, 다른 디자이너나 영엄당당, 사업총괄 등의 역할은 따로 없었다. 폴 그레이엄에 의하면 당시 Viaweb의 경쟁사는 20개 이상 되었으며, 그 중에는 엔지니어만 100명 이상의 큰 회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중에서 시장에서 시장의 승리자로 군림한 것은 Viaweb 이었다.

Viaweb의 전략은 단순했다. 이들이 택한 것은 경쟁사에 대항해 어떤 특별한 병법 같은 것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경쟁사들보다 더 발전된 기능을 더 빠른 시간 내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Viaweb은 경쟁사들에 한참 앞서 새로운 기능을 선보였다. 간혹 가다 경쟁사들이 위협이 될만한 새로운 기능을 선보이는 참이면, Viaweb의 개발자들은 2일 내에 비슷한 개발해내곤 했다. 경쟁사들이 새로운 기능이라고 언론을 통해 홍보될 쯤이면, 이미 Viaweb에도 비슷한 기능이 업데이트 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경쟁사들은 항상 Viaweb의 비밀이 궁금해했다. 도대체 Viaweb에는 얼마나 많은 개발자들이 있는 것인가? Viaweb에는 어떤 스파이가 있어서 다른 회사의 비밀 정보를 항상 캐오는 걸까?

Viaweb에는 분명 비밀 무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숨겨둔 개발자 군단도 아니었고, 스파이도 아니었다. Viaweb의 비밀은 lisp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였다. lisp은 1958년 고안된 굉장히 오래된 언어이며, 현업에서 쓰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언어가 아니었다. 당시에도 굉장히 소수의 프로그래머들만이 이 언어를 사용했으며 현재까지도 이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경쟁사들 중 lisp를 주력 언어로 쓴 회사는 Viaweb이 유일했다.

lisp의 장점은 그 어떤 언어보다 더 추상화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추상화 정도가 더 높다는 것은 더 짧은 문장으로 같은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다시 말하면 더 짧은 코드로 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많은 경우 lisp는 C언어에 비해 10배 더 짧은 코드량으로 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코드량이 짧아진다는 것은 개발 시간이 더 줄어든다는 이점 외에도,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버그를 고치는 데에 드는 시간도 극적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왜 경쟁사들은 lisp를 개발 언어로선택하지 않았을까? 사실 당시 웹쇼핑몰 빌더라는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lisp라는 언어를 쓰는 회사 자체가 전무했다. 회사라는 것은 대개 많은 사람들 사이의 협업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lisp를 회사의 주력 개발언어로 삼는다는 것은 마치 미국에 위치한 회사에서 몽골어 구사자를 채용해고 모든 내부 보고서를 몽골어로 작성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즉 애초에 lisp를 고려한다는 것은 당시 대부분의 IT회사들의 대표에게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으며, 설사 이 언어의 존재를 알았다고 해도 이런 모험을 감행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다른 언어로도 똑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당대 최고라 하는 IT회사들이 모두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면 왜 굳이 내 회사로 실험을 해야할까?

하지만 폴 그레이엄이 말하는 진실은 다르다. 한 스타트업이 생존 하기 위해서는 창업자는 반드시 매우 위험하고 도전적인 실험을 해야한다. 대규모 IT회사들의 경우 업계의 관습을 따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연 10%의 성장으로 충분히 생존할 수 있으며 크게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지만 않으면 이는 달성하기 어렵지 않은 목표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경우 장기적 생존확률 자체가 희박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것으로는 부족하다. 남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서비스는 대기업이 언제든 모방하고 잠식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압도적인 차별점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스타트업에 비상식적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폴 그레이엄의 메시지는 모든 IT 스타트업들이 lisp를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현재에도 lisp는 여전히 실험적인 언어이며 이런 언어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프로그래머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IT스타트업을 할 때 현재 업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기술이 무엇인지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이 개발자 창업자라면 시장에 Java개발자가 얼마나 많다 혹은 요새는 Angular는 아무도쓰지 않는다 같은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당신이 해결하려는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당신의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을 선택해라. 그리고 당신의 회사의 기술은 남들과는 무언가 달라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