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posts


창의성의 비결은 단순함과 반복

2020-03-24

Life Lesson

창의성은 대개 신비롭고 타고난 재능으로 여겨진다. 예술, 과학, 기술 등 어떤 분야에서든, 창의성은 그 분야를 혁신적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창의성의 근원에 대해 깊이 파고들면, 우리는 그것이 단순히 재능이나 우연의 산물만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트릿댄스 씬에 관심도 많고 댄서들의 영상을 평소 즐겨보는 편이다. 영상들을 보면 댄서들은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신기할 정도로 정교하게 잘 짜여진 동작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낸다. 인간의 뇌로 이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경외감마저 들곤 한다.

스트릿댄스 씬은 매니아 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서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팝핑 댄서분들이 많은데, 서울에서도 그들의 수업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나는 이십대 초반부터 취미로 다양한 팝핑 댄서들의 수업을 듣곤 했는데 가까이서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프리스타일을 가르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스트릿댄서마다 서로 다른 연습방법들을 제시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반복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댄서들은 수업의 많은 시간을 루틴 연습에 할애한다. 여기서 루틴이란 건 대개 32개에서 64개 정도의 정해진 동작을 음악에 맞춰 반복해서 추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어떤 음악에도 무난하게 프리스타일을 출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주 2-3회 수업을 듣는 빈도로 1-2년 가량의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동작을 암기하는 것만으로 프리스타일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동작을 암기 하는 데 시간을 쓰는 만큼 연습한 동작을 사용해 본인의 프리스타일에 적용해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무작위로 음악을 틀어두고 자신이 그날 배운 동작과 기존에 알고있는 동작들을 조합해 적용해 보아야 한다. 처음에는 서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다 보면, 적어도 하루에 한두 가지 새로운 동작들을 자신이 익숙한 동작들과 조합하는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루틴 연습과 병행해서 이 과정을 수년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아무 음악에나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반복연습을 통한 창의성 증진은 댄스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상 가장 창의적으로 평가받는 인물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반복학습의 원칙을 따랐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이자, 피뢰침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글쓰기 실력을 늘리기 위해 다음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였다고 전해진다:

  • 모방할 가치가 있는 좋은 글을 선별한다.
  • 해당 글의 문장의 수만큼 낱장의 종이를 준비한 후, 각 문장의 키워드들을 적어두고 종이를 섞어둔다.
  • 원래 글이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며칠을 기다린다.
  • 종이들을 자신이 생각하기에 적절한 순서대로 배열한다.
  • 이 순서에 따라 글을 써본다.
  • 원문과 비교해서 문장 배열, 논리 구조에서 부족한 부분을 고친다..

창의성이란 것은,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마법과 같은 능력처럼 여겨지곤 한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한 일반적인 조언들은 사고방식이나 태도 변화와 같은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편견에 사로 잡히지 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다양한 곳을 여행하고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라’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조언들은, 창의성을 기르는 과정에 있어서 때때로 도움이 될지언정,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본질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결국에는 외부 자극에 따른 우리 뇌의 반응의 결과이다. 내가 바라보기에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부르는 활동도 결국은 내 뇌에 이미 저장된 값들을 활용한 결과일 뿐이며, 이는 유에서 무를 만들었다기 보다는 기존의 개념들의 재조합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뇌에 더 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고, 이를 적절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같은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정보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재능이라는 것도 분명 존재하여,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정보를 쉽게 흡수하고 오래전에 배운 정보를 많은 훈련 없이도 쉽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누구나 충분한 훈련을 통해 창의성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정해진 체계대로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것은 잘하지만 창의적인 일에는 영 소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창의성에 대해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체계적인 훈련을 잘하는 사람들이 창의성을 기르기에 가장 유리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의성을 기르기 위한 훈련을 할 때, 무엇을 연습하는 것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유리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한정된 시간만을 훈련에 할애할 수 있으며, 뇌가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용량 또한 무한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정보를 뇌에 저장하고 꺼냄을 반복할지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한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보다 많은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성이라는 단어는 ‘어려운’ 혹은 ‘특정 분야를 잘 아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이라는 속성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특수성(speciality)을 특징으로 한다. 즉,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전문성이다. 글쓰기를 예로 들자면, '감기'라는 일반적인 용어보다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용어가 더 전문적이며, '자동차'보다는 'Sport Utility Vehicle(SUV)'라는 용어가 더 전문적이다. 어떤 결과물이 창의적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그것이 흔해서는 안된다, 즉 특별해야만 한다. 때문에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가급적 많은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전문적인 무언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접근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예술, 과학, 기술 등 창의성이 중요시 되는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문성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무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요소를 습득하는데 집중하는 것은 창의성을 기르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능력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요소로만 머리를 채우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시인이고 단어 100개만을 사용해서 가급적 많은 시를 쓴다고 해보자. 이 경우 흔히 쓰이지 않는 전문적인 단어 100개를 선정하는 게 사용 빈도가 높은 일반적인 단어 100개의 단어를 선정하는 것보다 훨씬 불리하다. 왜냐하면 전문적인 단어는 아주 제한적인 문맥에서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애초에 다른 단어와 조합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전문성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특별함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특별한 요소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요소의 조합에서도 얼마든지 특별함이 나올 수 있다. 익숙하고 흔한 요소들의 장점은 많은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익숙한 요소들의 새롭고 신선한 조합으로 특별함을 느낀다. 쉬운 요소들을 많이 사용했을 때 독자나 시청자들이 더 쉽게 결과물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때문에 창의적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들과 쉽게 조합될 수 있는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는 많은 창작자나 연구자들이 기본기 훈련을 강조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